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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21: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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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펌] 임진왜란 발발 1년 3개월만에 일본의 피해
『일본전사 조선역』에 드러난 역사의 진실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의 핵심 지역을 점령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 1군이 부산 영도에 상륙한 이후, 4월 14일 부산성, 4월 15일 동래성이 함락된 것을 시작으로
5월 3일 한양성, 6월 15일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 조선의 성은 전투다운 전투도 벌이지 못한 채 함락되었다.
관군이 동원된 상주전투, 충주 탄금대전투, 임진강전투, 용인전투에서 조선군은 일방적으로 패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을 뿐더러 관심 밖이었던 임진왜란 과정에서 참전 일본군의 사망자 수를 계산해보면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24년 일본군부가 발간한 『일본전사 조선역』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 기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일본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더욱이 우리가 그 동안 간과했던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이 전투 중에 사망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기 이전인 1593년 1월 이전에 말이다.

임진왜란 과정에서 참전한 일본군의 사망자 수에 대해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을 뿐더러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전사 조선역』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 기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일본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피해만을 기억하느라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기 전에도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개전 초부터 참전한 일본군은 1번대에서 9번대까지 15만 8,700명이고,
규슈의 나고야성(名古屋城)에 예비군으로 준비된 병력은 10번대에서 16번대까지 11만 8,300명으로 총 28만 명이 넘는다.2)

일본 측 기록에는 1592년 4월 1차로 1~9번대가 조선에 상륙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밖의 부대가 조선에 상륙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고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장수가 조선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1593년 6월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점호 기록에 나고야의 예비대에 속한 대부분의 장수 이름과 이끌던 부대의 군사 수가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초기 전투에서부터 일본군의 병력 손실이 막심해서 나고야에 대기하던 예비 병력이 추가 배치됐다는 증거이다.
이는 임진왜란 개전 초부터 조선군의 저항이 격렬하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전사에 참전 기록이 확실한 일본군 숫자만을 계산할 경우, 임진왜란 초기부터 참전한 일본군은 22만 4,774명이고,
2차 진주성전투 개시 전(1593년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진주성 공격 명령서에 기록된 9만 3천 명과
예비 병력을 포함한 총 병력 수는 12만여 명이다.

이것을 계산하면 1592년 4월부터 1593년 6월 2차 진주성전투 이전까지 일본군 전사 및 실종자는 10만 명 이상이 된다.
2차 진주성전투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3만 8,000명을 합산하면 13만 8,086명이 임진왜란 동안 사망·행방불명이 되었고,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군 수는 8만 6,688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나고야에 주둔한 것으로 되어 있는 예비 병력 모두가 참전한 것으로 상정할 경우 참전 일본군 수는 28만 6,840명이고
손실자 수는 20만 152명으로 일본군은 1년 3개월 동안 참전자의 69.73%가 조선에서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군이 계속 승리한 것으로 기록된 임진왜란 초기 1년 동안,
일본군의 한양성 점령 이후 조선 8도를 분할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 군의 지역별 사망자 수치를 살펴보면,
조선군과 백성이 일본군에 대해 얼마나 맹렬히 저항하였는지 알 수 있다.

개전 초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작전명령서를 하달하여 1번대에서 9번대까지의 부대로 하여금 조선 8도를 분할 점령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의 선봉에서 가장 많은 전투기록을 남겼고,
평양까지 점령한 바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는 1592년 3월 조선출병 당시 18,700명 규모였으나,
9개월후인 1593년 3월에는 6,626명만이 생존하여 손실률이 64.56%에 달한다.

또한 전투기록이 많지 않은 황해도에 주둔했던 일본군 3번대(대표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같은 기간 동안 손실률이 53.80%,
강원도에 있던 일본군 4번대(대표장수: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의 손실률은 56.35%,
충청도에 주둔했던 5번대(대표장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손실률은 45.27%에 이른다.

또한 이들의 부대에 지속적으로 병력이 보충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손실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일본군은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전사 조선역에 드러난 진실 - 박희봉
121.170.xxx.xxx   2017.11.20(21:32:16) 수정 삭제

제대 손실 70프로면 그 제대 해체해야 하는 수준인데 역쉬 일본답게 끌고 가네요. 일본군도 게릴라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네요
121.135.xxx.xxx   2017.11.20(21:43:41) 수정 삭제

모든 것은 다 순신좌로부터 꼬이기 시작함.
부산 상륙 전에 "밥 먹지 마라! 오늘 아침밥은 조선 쌀로 짓는다!" 라고 병사들 사기 올리고
상륙해서 보니 조선은 중요 도시마다 쌀이 산처럼 쌓여
있는 일본과 딴판.. 네임드 급 도시에 쌀이 없어....어?... 그래도 진군 진군!!
보급선이 점점 길어지고....점령한 곳에는 쌀이 없어!
결국 본토서 날라 먹어야 하는데..육로로 가면 수송부대가 다 먹어 치움.
해로로 가려니 순신좌가 죄다 커트!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골골...쌀 구하러 나간 애들은 의병들에게 뚝배기 깨져서 안 돌아오고..
이 상태로 면역력 급하강..
어서와 대륙쪽 바이러스는 처음이지?
수천년<?>간 고립되서 살아온 애들 조선의 감기에도 죽어나감.
결론
병균과 순신좌의 콜라보..
121.147.xxx.xxx   2017.11.20(22:52:27) 수정 삭제

이순신의 미친 콘트롤과 전라도의 바다와 내륙에서 나오는 막대한 미네랄과 전라도 바락에서 나온 만랩 마린들이 아니었으면 최소 경상도는 일본땅이 됐을 것임.

아닐것 같죠? 현실에는 없을 것 같나요?
아일랜드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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